일단, 저의 다소 신여성주의(?)적 글을 피곤한 가운데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진형님의 다소 우회적인 "에코"이론 참 재미있게,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생태주의" 또는 "에콜로지"에 대한 님의 '촌천살인'적 표현, 앞으로 다른 곳에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진형님의 허락없이 한 번 써 먹겠습니다. 인문학에 해학도 가능하다는 것, 님을 통해 깨닫습니다.

대득님의 친 여성적 발언, 다소 땀 냄새도 나지만 대득님의 솔직 담백함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없고, 남자 싫어하는 여자없다' 이 만고의 진리(?)를 기만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불쌍한 거이지요.

딸에게도 이 책을 권해서 읽혔다는 마지막 잎새님의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과연 따님이 그 책을 읽으면서 어떤 표정이었을까?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것 전제하고,,,,,

좀 익살스러운 표정이 생각되어지더군요. '이게 뭔 말이여?'하는 표정 말입니다.

다시 책의 문제로 들어가서,,,,,

지금까지의 '한국 여성주의'는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주의적이었고, 소수 특별 계층에 속한 여성만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소위, 지식을 가진 소수의 여성들)의 주의와 주장은 그들의 기득권을 확장하는 일련의 "도구화" 됨으로서 그 본래 운동의 목적(소위, 여성해방)을 상실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성매매직업(?)여성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광고와 그 광고를 본 서구의 반응입니다. (아시다싶히, 참여정부이후 여성가족부의 중추적 브레인이 소위 한국 주류 "여성주의"계열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것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여성가족부에서 말하고자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몸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고, 서구의 반응은 이런 것입니다. '왜 직업여성(?)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뭐 이런 요지입니다. "부인은 성매매방지법만들고 남편은 영계찾는" 우리의 천박한 성 문화인식이 낳은 당연한 결과(세계적 망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성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옳다는 말이냐?" 벌써 이런 질문 속에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막연함이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가와 책이 있어요. 오늘은 이 작가와 책 이야기를 통해 남성은 여성의, 여성은 남성의 무엇을 보아야하고, 또 볼 수 있는지를 좀 진솔하게 생각해 보고 싶네요.

소개할 작가는  『백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입니다. 이름이 좀 길지요? 그리고 소개할 책은 그가 최근에 쓴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원제:Memria de mis putas tristes)'입니다.

우선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오십대의 포주가 아흔 살 된 노인에게 건네는 말이다.

노인은 아흔 살 생일날 아침, 그의 오랜 단골집 늙은 포주에게 처녀와 하룻밤 자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노인은 신문사 전신편집자로 사십년을 복무해왔고 금도 그 신문에 칼럼을 쓰는 자칭 '얼치기 기자'이다. '서글픈 언덕'이라고 불리우는 그는 결혼한 적도 없고 결혼할 마음도 없었다. 창녀들과 돈을 주고 섹스를 하는 생활에 길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십대부터 상대의 나이와 이름, 장소, 사랑을 나누게 된 상황과 사랑의 스타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십 줄에 들어설 때까지 그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잠을 잔 여자는 총 514명이었다. 그가 이런 성생활에 익숙해진 이유는 '순정한 여자란 세상에 없다' 그만의 여성에 대한 "괴팍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럭저럭 그런 생활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이 마음을 배반하기 시작하면서 그 생활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흔 살 생일날 그는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절망적인 바람을 갖게 된 것이다. 그에게 소개된 여자는 불과 14살짜리 소녀였고, 그 소녀는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맞에는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가련한 처지였다.

그 소녀는 밤에 노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잠만 잔다. 노인은 잠에 빠져든 소녀의 나신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리고 그 상황은 결국 노인이 믿지 않았던 사랑의 감정으로 치닫게 만든다. 노인은 '색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하다'고 중얼거리며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

나이 구십에  열 네살짜리 소녀를 사랑하게 된 노인이기 이전의 한 남자, 그 소설을 칠순이 넘은 나이에 쓰는 작가,,,,,,

작가는 그의 작품 속에서 구십의 노인의 눈과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잊은 채, 새벽녘에 잠을 깼다.

소녀는 내게 등을 돌리고 태아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깨어났었고,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그냥 꿈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난 유혹의 술책을 무시하고 있었다.

언제나 매력보다는 가격에 따라 하룻밤의 애인을 마구잡이로 선택해 왔고,

대개의 경우 옷도 반쯤만 벗고 사랑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사랑을 했었다.

환상을 최고조로 높이기 위해 늘 어둠 속에서 일을 치르곤 했다. 그

런데 그날 밤 나는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p.43

나는 이 장면에서 김기덕 감독의 '활'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얼치기" 영화 평론가는 그 영화에서 주로 활 이야기만 연신 해 댓지만, 저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서구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긴대로 노는 것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소비하고, 여성이 남성을 소비하는 작금의 천박한 남녀관이 판을 치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정말 절망감 마져듭니다.

사랑은요. 남녀간에만 할 수 있는 말이예요. 진정한 사랑은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입니다. 잠든 소녀를 진심어린 사랑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 아니 한 남자의 시선,,,,마르케스는 바로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생이주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프로이드에 의해 다소 희극화된 생의 의지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그 또 다른 이름인 "사랑",,,,,

장폴 뒤부아는 그의 소설 '프랑스적인 삶'에서,다음의 중요한 생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고독해 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결코 가볍게 보지 말아야할 것을 가볍게 보아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 역시 피곤은 글쓰기의 가장 큰 난적이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