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생산: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공장, 예를 들어 제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철광석과 코크스를 높은 온도에서 혼합해 여러 종류의 철강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일정액의 임금을 받기 위해 공장에 나간다. 여기에서 갖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임금은 무엇을 뜻할까? 보통, 임금은 노동자의 노동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누가 임금을 주는가? 기업주다. 그는 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다. 여기에서 우리의 의문은 더 커진다. 자본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은 엄청난 자본을 모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본을 하나도 갖지 못한 채 오직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해야 하는가? 자본가들은 공장을 가지고 있고, 그 공장의 기계, 설비, 원자재, 동력 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공장에서 일하는 몇 천명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철강이 과연 자본가들만의 것인가? 의문점은 수없이 불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나가보자.

먼저,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장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공장은 철강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알맞은 건물, 적당한 기계■설비, 적당히 보유한 에너지, 비축 원자재, 그리고 보조 자재들까지.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모두 휴가를 가 버린다면 그 공장은 멎어 버리고 만다. 노동자(노동력)만이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장이나 설비가 없으면 노동자들이 1킬로그램의 철강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공장■기계■원자재가 모두 생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것들을 생산력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산력은 인간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고 물질적 재화를 만들어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생산력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1. 생산수단: 이것은 보통 다음의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한편으로는, 찬연 자원에서 얻는 유용한 물질들, 예를 들어 광물, 석탄, 석유, 나무, 물 등.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하는 데 쓰는 도구들, 예컨대 연장과 기계로, 그리고 유용한 천연 자원을 추출하거나 거두어 들이고 운반하며 가공하는 데 쓰는 점점 발달하는 설비. 앞에서 들었던 예로 본다면, 제철 공장 자체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계, 설비, 에너지, 여러 가지 원자재와 보조 자재, 생산 라인 등이 이러한 생산수단에 해당한다.

2. 인간의 노동력: 이것이 없이는 땅 밑에서든, 땅 위에서든 천연 자원을 획득할 수도 없고, 사용할 장소로 옮길 수도 없으며, 공장의 기계나 설비가 있더라도 천연 자원을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으로 변형할 수가 없다.

3. 마지막으로, 생산력에는 또한 '간접 노동', 달리 말해 일반적 노동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일반적 노동은 노동자들이 몇 세대에 걸쳐 습득한 기능과 경험, 축적된 과학적 기여와 기술 혁신, 근대적 노동 조직 등을 뜻한다. 이 일반적 노동은 한편으로는 기계와 설비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결합함으로써 효율을 증대시킨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과거에는 비교적 완만했지만 지금은 훨씬 급속해져 생산 기술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생산력에 대한 이상의 요약적 정의를 토대로 우리는 노동자---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다---와 자본가---기계와 설비를 갗춘 공장을 소유하고 있고, 원자재를 사들이고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유동 자본까지 가지고 있다---사이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물질적 재화를 생산할 목적으로 생산력과 맺는 이 서로 다른 관계를 생산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일단 여기에서, 한편으로는 생산력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관계가 함께 생산양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용어는 다소 막연하고 일반적으로나마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는 데 쓰인다. 하나의 생산양식은 그 생산력이 도달해 있는 수준과 작용하고 있는 생산관계의 전형에 의해 정의된다. 또,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서로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중세에는 생산력, 특히 생산수단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고작 개별적인 농민 또는 장인 생산에 머물렀다. 그런 상황에서는 생산관계가 주로 영주와 농노, 직인과 장인 간의 개인 관계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함께 '봉건제' 생산양식을 결정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처음으로 자본을 모은 사람들이 가내 작업장을 만들고, 거기에 노동자들이 모여 임금을 받으려고 고용주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노동자들은 전에는 자신의 노동으로 만든 생산물을 통제하는 독립적 장인이었다. 생산 도구나 생산 방법이 아직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형태의 노동 조직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싹을 내포하고 있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기계화로 인해 가내 작업장이 공장으로 바뀌고 대규모 공업이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도약'한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두 가지 특징은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것과 극소수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러한 생산수단을 가동할 수 있는 생산적 노동이 전례 없이 거대한 기업으로 집중돼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모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노동력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력을 생산수단의 지배자인 자본가에게 팔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생산관계가 발생한다.(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상반하는 이해 관계를 가진 두 개의 사회 계급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한편에는 거의 모든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소수의 계급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자본가 계급이 지배하는 생산수단을 가동할 능력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 있다. 이들은 수적으로 거대하다.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이들이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 가운데 최대한의 몫을 얻어 내기 위해 싸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 계급---이들은 생산수단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 생산수단이 없으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도 역시 자기 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극대화를 요구한다. 생산관계는 더 이상 개인들의 관계가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모순으로 서로 연계돼있는 두 계급 간의 사회적 관계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은 점점 집단적 또는 '사회적' 생산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 체제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한데, 그들은 그저 개별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의 분할과 조직을 통해 진짜 '집단적' 노동자가 됐다. 둘째로, 생산된 물건들은 사회 전체를 상대로 만들어진다. 역설은, 이처럼 전형적으로 사회적인 생산을 통제하고 지도하고 계획하는 것이 생산자나 전체 사회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극소수 사람들---이들은 이윤도 차지한다---이라는 것이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생산의 계획과 통제는 소수 자본가들에 의해 그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당하고 분별 있는 일일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생산의 사회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이다. 이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낳은 것이므로, 자본주의가 발달한다고 해서 감소한다든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지고 깊어진다. 좀더 유력한 자본가들이 경제 체제와 국가를 독차지하게 된다. 더구나 그들의 숫자는 끊임없이 감소하고 있다.(뒤에서 설명하겠다.) 동시에, 생산자의 수는 계속 늘어 가며, 또한 그 이해관계와 희망이 생산적 노동자들과 점점 더 같아지고 있는 불생산적 노동자 집단도 계속 커진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틀 안에서는 이 모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 모순이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는 노동자와 그 동맹자들, 다른 한편에는 자본가와 그 지지자들이 있다. 이 둘 사이의 계급투쟁은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객관적이고 불가피한 필연이다.

생산력은 특정 생산양식을 결정하는 데 한몫 하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진보하고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은 발명과 발전을 계속해 왔다(쟁기, 수차, 우마차, 도르래, 그리고 더 근래에는 증기기관, 전기, 핵 에너지 등). 이러한 발명과 발견은 새로운 생산도구를 만들어 낸다. 또, 그것은 인간의 기능과 지식을 개발함으로써 새롭고 더 진보한 발명과 발견을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상향 추세는 무한히 계속된다.

반면에, 생산관계는 법률과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고정된다. 기존 생산관계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경제■정치 권력자들은 법률의 힘으로 기존 생산관계를 안정시키려 한다(예컨대 법률이나 헌법으로 사유재산을 보장). 따라서 생산관계는 격렬한 수단을 통해서만, 즉 '기존 질서'의 종식을 목표로 하는 근본적 사회 변혁을 통해서만 변할 수 있다.

생산력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반면에 생산관계는 정지된 채로 남는다. 그러다가 마치 어린이가 자라나면서 옷이 점차 작아져 여기저기가 뜻어져 나가는 것처럼, 이 생산관계는 팽창하는 생산력 수준에 더 이상 부합하지 못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현재의 생산력 수준으로도 많은 물질적■문화적■개인적■사회적■명시적■잠재적 필요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오직 자본가 계급의 이윤 창출만을 위해 작용하고 있기 떄문에, 이러한 필요들은 대부분 무시될 수밖에 없다. 역사상, 특권을 가진 소수파 계급이 인류의 진보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예는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에 인간에게 생산력 발전과 생산관계 사이의 객관적인 충돌은 계급 간의 충돌로 나타난다. 즉, 자기들의 계급 이익에 이바지하는 구래의 생산관계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기본적으로 보수 반동적인 입장) 지배계급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산관계의 변혁을 강요하는(기본적으로 진보적이거나 혁명적인 입장) 피억업■피착취 계급들 간의 충돌이 나타난다.